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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막글] 남겨진 이야기 본문

SN Fic/sev

[토막글] 남겨진 이야기

다럄 2018. 7. 7. 01:06

남겨진 이야기

 

전쟁이 끝나고 처참한 상흔을 지우는 데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 와중에 호그와트는 몇 번이나 폐교 위기에 처했고, 맥고나걸 교수는 날마다 날아오는 항의 편지에 답장하기 바빴다. 다행히도 지지하는 이들이 있어 새 학기를 준비할 기회를 얻게 되었다. 학생들을 맞이하기에 앞서 본격적으로 성 곳곳을 고치기 시작했다. 교실과 복도를 수리하고 박살 난 교구 대신 새로운 교구를 들여왔다. 그때쯤 집요정들이 누군가의 처소에 남은 물건은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물어왔다. 세베루스에겐 죽음을 준비할 시간이 충분하지 않았다. 당장이라도 살아 돌아올 듯 많은 것들이 남아있을 줄 알았었다. 상자 하나를 겨우 채우는 양에 처소를 정리하던 집요정들은 없어진 물건이 있다며 난리를 피웠다. 그들을 진정시키고 상자를 교장실로 가져왔다.

 

옷가지들을 모두 버리기라도 한 건지 남은 건 까만 망토뿐이었다. 맥고나걸이 끝이 다 해진 망토를 보다가 세베루스의 생전 모습을 떠올렸다. 크리스마스 연회든, 트리위저드 행사든 세베루스는 항상 같은 차림을 고수했었다. 같은 옷을 여러 벌 샀을 거라고 농담을 교수들끼리 할 정도였다. 그런데 지금 와 생각해보니 까만 망토와 옷가지 몇 개가 전부였던 거 같다. 자신을 돌보는 일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었으니 당연한 걸지도 모른다.

 

망토를 내려놓고 책들을 차례로 꺼내었다. 마법약 수업에 필요한 책들이었다. 근처에 놓인 의자에 앉아 책장을 하나씩 넘겼다. 세베루스는 교수들과 어울리기보단 책을 들여다보는 것을 더 좋아했었다. 그리핀도르들에게 악명이 자자했던 것과 별개로 책 안엔 필기가 가득했다. 하루도 빼먹지 않고 냄비를 터트리는 멍청이들을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정말 진지하고 고민한 듯 했다. 그의 나머지 교직 생활을 되돌아봤을 때 그런 순수한 고민은 초임 때나 했을 것이다. 한숨과 웃음이 섞인 소리를 내뱉고 책을 한쪽으로 치웠다.

 

철제로 된 사탕 케이스가 보였다. 케이스의 화려한 겉표지를 벗기려다 실패한 흔적을 발견하곤 쿡쿡 웃었다. 제대로 된 식사보다 영양가는 없지만 맛있는 케이크를 곧잘 먹었던 게 기억이 났다. 세베루스는 덤블도어의 기상천외한 일 처리 때문에 성질을 있는 대로 부리다가도 교수들이 단 음식을 꺼내면 조용해지곤 했었다. 뚜껑을 열자 뜯지 않은 사탕들이 그녀를 반겼다. 지루하고 어두운 시간 동안 낡아버린 사탕들은 주인을 잃고 상자 안에 외롭게 남아있었다. 불현듯 묘한 기운을 내뿜던 그의 뒷모습이 떠올라 케이스 뚜껑을 덮었다.

 

이제 상자 안에 남은 물건은 얼마 없었다. 채점을 포기한 과제 몇 장과 처리하지 못한 공문들뿐이었다. 어지러이 섞여 있는 양피지들을 정리하는데 무언가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그와는 어울리지 않는 물건이었다. 혹여 여린 잎이 상할까 손끝으로 집어 들자 향이 코끝을 찔렀다. 약품처리가 된 꽃을 이리저리 살피다 짧게 탄식했다. 하얗고 강렬한 향을 가진 꽃의 이름은 그가 사랑했던 누군가의 이름이기도 했다. 꽃을 들고 초상화 사이에 걸린 작은 액자로 다가갔다.

 

죽음을 준비할 시간이 없었던 건지, 아니면 흔적도 없이 사라지길 원했는지 그는 초상화 한 점 남기지 않았다. 그만한 이유가 있을 거로 생각하면서도 아무것도 남겨두지 않으면 모두가 그를 잊어버릴 것 같아 작은 사진을 걸어두었다. 슬리데린 기숙사 우승 기념으로 찍은 낡은 사진이었지만 초상화를 대신하기엔 충분했다. 맥고나걸이 사진을 바라보고 미소를 짓다 액자 틈에 꽃을 끼워 넣었다.

 

사람들은 세베루스를 두고 이기적이고 괴팍한 마법사, 소임을 다하고 떠난 영웅 등 여러 이야기를 해댔다. 그 무엇도 그를 설명하기엔 부족했다. 자리로 돌아와 유품을 상자에 차곡차곡 담고 잠시 눈을 감았다. 그를 묻었던 그날처럼. 아련한 기억 속에서 무뚝뚝한 얼굴의 슬리데린 사감을 보았다가 교실 한구석에 앉은 깡마른 소년을 보았다. 누구보다 외로웠을 마법사를 기리며 상자의 뚜껑을 덮었다.   





*가독성을 위해 임의로 문단을 구분했습니다. 

**자기만족용 글이기 때문에 많이 부족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