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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 Fic/기타

시리스네 무제

다럄 2018. 2. 2. 00:35

무제  

[시리스네] 


* 주의: 짧고 개연성이 없습니다. 

 




01

주르륵 차례로 손가락 움직여 테이블을 두드렸다. 약지에서 시작한 리듬이 검지에 이르는 동안 시리우스는 끈질긴 시선으로 맞은편에 앉은 이를 훑었다. 일부러 화를 돋우는 건지도 모른다. 테이블을 뒤집고 결투를 청하는 대신 집요정이 내온 차를 홀짝 들이키는 모습은 낯설다 못해 두렵기까지 했다. 먼저 다가가 그 심중을 들여다 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리핀도르를 겁쟁이로 만든 이는 찻잔을 내려놓더니 설탕을 하나 더 넣었다.

 

그분 밑에서 일하더니 단 것 좋아하는 습관도 닮아버린 건가? 아님 그런 척을 하는 거야?”

 

비꼬는 말에도 답이 없었다. 멱살이라도 잡고 싶었으나 두 사람의 거리는 너무나 멀었다. 기사단원들이 모여 회의할 공간이 필요하단 의견에 무턱대고 길고 넓은 테이블을 장만한 것을 속으로 책망했다. 도움이 될 수 있단 생각에 들떠 리무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다이애건 앨리에서 가장 비싸고 큰 테이블을 샀는데, 앞에 앉은 이는 그것조차 모를 것이다. 이기적이고 비열하고 짜증나는 녀석이니까.

 

흙먼지를 날리며 황야를 달려야 그에게 도달할 수 있을 듯 했다. 긴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앉은 두 사람은 그만큼의 침묵을 지켰다. 시리우스는 발작이라도 일으킬 듯 정신없이 테이블을 두드려댔으나, 맞은편에 앉은 이는 어느 때보다 평화로운 표정으로 차를 즐겼다. 그때 시리우스의 머릿속에서 섬광이 번쩍였다. 탁하고 어두운 눈동자에 분노를 서리게 할 수 있는 기억의 타래였다.

 

그날도 지금처럼 굴다가 나에게 한 방 먹었었지, 기억나?”

 

 

02

그들은 가문의 영화를 걷어차고 그리핀도르를 택한 시리우스를 못마땅하게 여겼다. ‘블랙이란 감히 입에 올릴 수 없는 성을 갖고도 하찮은 이들과 어울리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시리우스는 그 시선에 관심이 없었다. 슬리데린처럼 비열한 종자들과는 어떤 이유로든 섞이고 싶지 않은 탓이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어떤 녀석이 그의 신경을 거스르기 시작했다. 녀석은 그들처럼 시기 섞인 경멸을 보내지도 않았고, 험담을 늘어놓지 않았다. 숨 막히는 침묵 속에서 시리우스를 증오하고 또 증오할 뿐이었다. 어쩌다 창백한 얼굴에 새겨진 검은 빛을 마주하면 간담이 서늘해졌다. 그때마다 그는 검은 빛의 주인을 유치한 고통 속에 집어넣었다.

 

스니벨루스!”

 

어쩌다 붙은 별명이었다. 다른 녀석이었다면 눈에서 눈물 꽤나 뺐을 텐데, 녀석은 소름끼치는 눈빛으로 그를 증오하는 게 다였다. 시리우스가 던진 공에 녀석이 들고 있던 책들이 우르르 무너졌다. 대리석 바닥에 둔탁한 소리와 검은 눈길이 내려앉았다. 엉뚱한 것에 관심을 쏟고 있는 녀석을 비웃곤 그대로 돌진했다. 지팡이를 쥔 손에 힘을 주며 녀석의 다음 행동을 기다렸다. 제임스를 대할 때처럼 암울한 목소리로 저주를 읊길 원했다.

 

너 따위 상대할 시간 없으니까 적당히 하고 꺼져.”

 

험악한 말이 나왔으니 곧 저주를 퍼부을 것이다. 시리우스가 이를 드러내며 활짝 웃더니 지팡이를 치켜 올렸다. 녀석이 주문을 마치기도 전에 적당한 주문으로 골려줄 작정이었다. 그러면 그딴 우울한 표정을 짓지 않겠지. 일이 벌어지기도 전에 속내를 들킨 건지 녀석은 조용히 책만 챙겨 자리를 피했다.

 

! 어디가!”

 

아쉬운 마음에 자존심일랑 버리고 따라붙었다. 우뚝 걸음을 멈춘 녀석이 고갤 돌리더니 이를 부드득 갈았다. 분을 이기지 못하면 나오는 습관이었다. 절박하고 치열한 그 행동을 보면 마음 깊은 곳에서 묘한 희열이 느껴져 시리우스는 일부러 녀석의 속을 긁었다. 릴리가 안다면 입에서 불을 뿜으며 비난을 퍼붓겠지만 지금은 신경 쓰고 싶지 않았다.

 

꺼지라고 했지, 블랙.”

웬일이야? 네가 또 새로운 저주를 선보일 줄 알았는데 말이지.”

징그러운 새끼.”

 

피곤한 기색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며 부르튼 입술로 욕을 내뱉는 모습은 정말이지 스네이프다웠다. 녀석이 갖고 있는 분노와 증오는 잠깐 피어올랐다가 사라지는 성냥불이 아니었다. 아주 오래 전부터 서서히 피어올라 숲을 살라먹고 어떤 희망마저 집어삼킨 화마였다. 시리우스는 자신이 불씨를 피웠다는 사실에 만족을 느꼈다. ?

 

이 감정은 대체 무엇일까? 어디서 비롯되었기에 이다지도 그를 묘하고 어지러운 소용돌이 속으로 밀어 넣는 것일까? 시리우스는 녀석과 마주 선채로 답을 찾으려 애썼다. 그동안 녀석은 무거운 책을 집어던지고 시리우스의 바람대로 지팡이를 들고 공격할 태세를 갖췄다. 시리우스의 매력적인 눈동자가 기름진 머리 위에 앉았다가 얼굴선을 따라 천천히 내려왔다. 볼품없는 매부리코를 훑다가 서늘한 검은 눈동자를 들여다보고, 마지막으로 입술에 멈추었다.

 

그래, 그러니까 징그러운 짓 좀 해볼게.”

 

 

03

문을 열 때부터 개판이었다. 급하게 끼어들지 않았다면 스네이프는 정말로 시리우스를 죽였을 지도 모른다. 박살난 테이블을 돌려놓은 덤블도어가 한숨을 쉬며 의자에 앉았다. 대체 무슨 생각으로 싸움을 벌인 거냐고 묻자 시리우스는 짜증날 정도로 매력적인 미소를 지었고, 스네이프는 형형한 눈으로 그를 노려보았다. 절대 둘을 함께 두지 말란 맥고나걸의 조언을 흘려듣는 게 아니었다.

 

이유도 없이 싸우진 않았겠지? 알다시피 난 이제 자네들에게 징계를 내릴 권한이 없다네.”

 

옆에서 콧방귀 뀌는 소리가 들렸다. 스네이프가 특유의 표정으로 비웃더니 검은 망토를 펄럭이며 자리를 떠났다. 시리우스는 피가 흘러내리는 입가를 닦으며 눈으론 끈질기게 그를 쫓았다. 언젠가 리무스가 말한 징그러운 악연이 또 말썽인가 싶어 그 사이를 가로 막았다. 그러자 피어오르던 무언가가 사그라지고 덤블도어가 아는 매력적이고 구제불능인 시리우스 블랙으로 돌아왔다.

 

제가 저 녀석을 죽이기라도 할까봐 걱정되시나요?”

자네가 세베루스를 쫓아가지 않도록 막은 걸세.”

어떻게 아셨어요? 정말 쫓아갈 생각이었는데.”

 

입맛을 다시며 자리에서 일어나는 시리우스를 부축했다. 그의 얼굴엔 어떤 불쾌감도 승리감도 비치지 않았다. 시리우스는……. 마치 사냥을 마친 표범처럼 보였다. 먹잇감의 빈틈을 노려 원하는 바를 얻었을 때 지을 수 있는 미소가 시리우스의 입가에 걸려있었다.

 

 

04

 

스니벨루스, 또 같은 선택을 또 할 줄은 몰랐네. 그때도 이렇게 부르튼 입술이었는데, 이상할 정도로 부드러웠어. 따로 관리라도 받는 거야? 아니면 포션마스터만의 비법이라도 있는 건가? 아아, 그렇게 무서운 표정 짓지 말라고. 오늘은 여기서 안 끝낼 거야. 그땐 가볍고 짧았지만 이번엔 깊고 길게 할 거야. 그러니 입술 좀 벌리지 그래? 아무리 나라도 틈이 없으면 힘들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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