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축전] 케이크
Cake
Severus snape 1960. 01. 09
01
호그와트로 와달란 전갈을 받고 급히 달려왔다. 숨을 헐떡이며 정문을 두드리자 필치가 심술궂은 표정으로 문을 열며 길을 안내했다. 탑으로 갈 거란 예상과 달리 필치의 걸음은 지하로 향했다. 방학을 맞아 고요한 성내엔 둔탁한 걸음 소리만 울려 퍼졌다. 지하로 향하는 계단 앞에서 해리가 망토를 여몄다. 늘 그랬지만 지하는 눅눅하면서도 서늘한 기운이 가득했다. 기억 속의 어떤 이를 생각나게 하는 분위기였다.
“손님이 도착했습니다.”
꽤 예의를 차린 필치의 말에 빈 마법약 교실을 지키고 있던 맥고나걸이 고갤 끄덕였다. 엉망이 된 학교를 복구하고 겁에 질린 학부모들을 설득하느냐 누구보다 바쁜 1년을 보낸 그녀였다. 해리가 오랜만에 만난 스승을 보고 미소를 지었다. 그녀 역시 사각 안경 너머로 엄격함 대신 반가움을 가득 실은 눈길을 보냈다.
“수습 생활은 어떠니?”
“아직 견딜 만해요.”
“그렇다니 마음이 한결 놓이는구나.”
다시 한번 따스한 미소를 지어 보인 맥고나걸이 지팡이를 휘둘렀다. 그러자 테이블 위에 놓인 어떤 물체에 불이 붙었다. 무엇이든 집어삼킬 듯 강렬하게 타오르는 화염이 아닌 은은한 불빛이었다. 어두운 교실에 미약한 빛이 퍼지고 나서야 그 아래 놓인 물체가 무엇인지 확인할 수 있었다. 매끈한 모양에 진한 빛깔 그리고 달콤한 향기, 초콜릿 케이크였다. 일렁이는 촛불과 그 아래 모습을 뽐내는 케이크를 번갈아 보던 해리가 다시 맥고나걸을 응시했다.
“호, 혹시 교수님 생신이신가요?”
“다른 사람의 생일이란다.”
“네? 어떤 분…….”
뒷말을 삼켰다. 은은한 빛을 받는 교실을 눈으로 훑다가 다시 케이크를 내려다보았다. 언젠가 이 교실에서 학생들을 가르쳤을 한 사람을 떠올렸다. 울컥 올라오는 감정을 삼키려 입술을 깨물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만큼은 알아야 했는데. 뒤섞이는 감정들을 갈무리하며 천천히 입술을 떼었다.
“스네이프 교수님 생신이군요. 그런 줄도 몰랐어요.”
“세베루스가 생일을 챙기거나 티내는 사람은 아니었잖니.”
불현듯 그 사람 곁엔 아무도 없었단 처참한 사실을 떠올렸다. 축하는커녕 그가 태어난 날을 기억하는 사람조차 없을 것이다. 목이 콱 막히는 기분이었다. 그의 생전 목소리를 기억해냈다. 울음을 터트리려는 자신을 마음껏 비웃는 그를 만들어냈다. 그러면 비통한 마음이 조금 나아질지도 모른다.
일렁이는 촛불을 사이에 두고 두 사람은 잠시 침묵으로 포장한 애도의 시간을 가졌다. 맥고나걸이 잠시 눈물을 훔치더니 지팡이를 두드렸다. 그러자 흘러내리던 촛농이 굳고 아슬아슬 피어오르던 불빛이 다시 생명을 찾았다. 영원히 흔들리지 않고 타오르기 바라는 듯했다. 멍하니 촛불과 케이크를 바라보던 맥고나걸이 피식 웃음을 터트리며 기억을 끄집어냈다.
“세베루스가 부임하고 몇 년간은 정말 정신이 없었지. 알버스는 도대체 무슨 생각인지 적응하기도 바쁜 신임 교수를 교감보다 더 자주 찾았지. 그땐 둘이서 무슨 작당 모의라도 하는 줄 알았단다. 근데 두 사람이 앞으로의 일을 계획했을 줄은…….”
맥고나걸이 말끝을 흐렸다. 불빛이 일렁이자 사각 안경에 비친 빛도 따라 일렁였다. 해리는 그녀가 기억하고 있는 세베루스 스네이프의 젊은 시절에 대해 더 듣고 싶었다. 구겨진 손수건을 건네었다. 그러면서 정중하고 침착한 말투로 그녀에게 청했다.
“교수님, 괜찮다면 그 뒤의 얘기도 들을 수 있을까요?”
늙은이 한탄에 친절하게 반응하지 않아도 된다며 웃던 맥고나걸이 해리를 보고 입을 다물었다. 진지하면서도 슬픔이 깃든 눈을 바라보던 그녀가 손수건으로 눈가를 훔치곤 이야기를 이어갔다. 멀진 않지만, 지금보다 오래 전의 이야기였다.
02
“알버스, 그래서 그 공문들을 다 세베루스에게 맡겼단 말씀이신가요?”
“그렇습니다. 아시다시피 그는 일을 굉장히 빠르고 정확하게 처리하죠.”
알버스 덤블도어, 존경해마지 않는 마법사였지만 가끔 그를 호박으로 바꾸고 싶은 충동에 시달리곤 했다. 보랏빛 로브를 정리하며 자리에 앉은 덤블도어가 차를 권했다. 하루가 멀다 하고 부엉이들이 공문을 배달하는 상황에 티타임이라니! 단호하게 거절하고 발을 구르며 교장실을 나왔다. 교감이 시퍼렇게 눈을 뜨고 있는 마당에 부임한 지 1년이 갓 넘은 새파란 교수에게 중요한 일들을 맡기는 건 대체 무슨 심보인가 싶었다. 그래, 복잡한 생각일랑 그만두고 퀴디치 연습이나 보는 게 좋겠다. 집무실로 향하던 발길을 돌려 퀴디치 경기장으로 향하려는데, 멀리서 검디검은 마법사가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세베루스, 또 교장실로 가는 모양이죠?”
“네, 처리한 공문에 대해 보고하러 가는 길입니다.”
고갤 까딱이고 교장실로 향하는 교수를 보고 맥고나걸이 혀를 찼다. 여러 불만에도 불구하고 신임 교수에게 화를 내지 않는 이유는 간단했다. 과중한 업무로 눈 아래 그려진 그림자와 비쩍 마른 뺨, 그리고 흔들거리는 걸음. 일이 많은 탓에 연회 땐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금방 자릴 떠났다. 은근슬쩍 도와주겠단 의사를 비쳤지만, 신임 교수는 무뚝뚝한 얼굴로 거절했다. 그러다 쓰러지기라도 하면 폼프리 부인이 덤블도어를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그래, 저번처럼 격리병동에 가두고 먹고 자는 것만 시킬지도 모르지.”
맥고나걸이 쿡쿡 웃다가 걸음을 서둘렀다. 이번 학기엔 기필코 슬리데린의 그 고약한 코를 눌러 주리라 마음을 먹었다. 세베루스가 분명 못마땅해 하겠지만, 퀴디치 우승만큼은 놓칠 수 없었다.
03
좀 평온해지는가 싶으면 꼭 사건이 터졌다. 오늘만 해도 래번클로의 어떤 녀석이 실험을 이유로 레시피를 무시하고 멋대로 마법약을 만들었다가 교실 하나를 날려버렸다. 사고는 래번클로 녀석이 쳤는데, 수습은 세베루스 혼자 다 했다. 교무실에 들어선 순간 세베루스는 가슴 속 깊이 차올라오는 배신감을 누르지 못했다. 그가 고생하는 동안 시니어들끼리 모여 앉아 껄껄 웃으면서 신임 교수가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것을 즐기고 있었다. 맥고나걸이 그를 발견하고 미소를 지으며 자릴 권했다.
“세베루스, 일을 다 마쳤다면 이리 와서 차 좀 들어요. 포모나가 아시아에 사는 친구에게 받은 찻잎인데 향이 아주 좋습니다.”
다정하게 말을 거는 듯했으나 눈으론 그를 탐색하고 있었다. 맥고나걸의 눈길이 먼지투성이가 된 망토 끝자락에 닿았다. 턱에서 소리가 날 정도로 이를 악물며 망토 자락을 거칠게 걷었다. 스프라우트 교수가 가져온 찻잔을 거절하고 거칠게 교무실 문을 닫았다. 할 일이 태산이라 차 마실 시간조차 없었다. 태평하게 차나 즐기고 있으니, 기숙사들 점수가 그 모양이지. 세베루스가 기숙사 점수를 세었다. 아침에 본 것만 따진다면 이번 학기 우승컵도 슬리데린 차지가 될 것이다. 꿈틀거리는 입가를 억누르며 지하로 향했다.
3학년 수업은 지옥 그 자체였다. 간단한 마법약조차 만들지 못해 수업마다 폭탄을 만들어내는 이들을 가르친다는 건, 고블린의 입을 닥치게 하는 것만큼이나 어려웠다. 세베루스가 끓어오르는 분홍빛 거품을 보고 혀를 찼다. 도롱뇽 꼬리를 넣고 세 번 저으라고 그렇게 말했건만, 또 자기들 멋대로 냄비를 휘저었다. 그대로 두면 사방으로 튀어 종기를 달고 끙끙거릴 멍청이들이 속출할 게 훤했다. 지팡이를 휘둘러 냄비를 비우고 포션마스터라도 된 양 건방을 떤 기숙사를 감점했다. 다시 교탁으로 걸어가는데 뒤에서 속닥거리며 불만을 토하는 소리가 들렸다.
“더 감점당하고 싶지 않다고 정신 똑바로 차리도록.”
화를 낼 기운조차 남아 있지 않아 경련이 이는 눈가를 문지르며 의자에 앉았다. 그의 경고가 먹혔다면 또 냄비를 터트리거나 재료를 낭비하지 않을 것이다. 책상 위에 놓인 커피를 한 모금 들이켰다. 만약 신이 있다면 세베루스는 왜 커피가 이따위 맛인지, 왜 커피를 마셔야 의식을 연명할 수 있는지 따지고 싶었다. 쓰디쓴 맛을 넘기고 입맛을 다셨다. ‘릴리, 사실 난 단 음식이 좋아!’, 어릴 적 기억이 의식을 굽이쳐 흘러갔다.
애달픈 잔상에 눈이 감기려는 찰나 교실 구석에서 파열음이 들렸다.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군. 무거운 몸을 일으키자 코를 틀어막고 웅크린 학생들이 보였다. 세 번만 저으라는 말이 그렇게 이해하기 어려운가? 입학하기 전에 듣기나 독서 능력을 확인하는 절차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만약 진지하게 건의라도 하면 덤블도어는 또 사람 좋은 웃음을 터트리며, 신임 교수의 상상력을 높이 칭찬할지도 모른다. 빌어먹을, 그 노인네도 그가 고생하는 것을 즐기는 게 분명하다. 상태가 심각한 아이들을 병동으로 보내고, 나머지 아이들에게 정리를 맡긴 세베루스가 들릴 듯 말 듯 한숨을 내쉬었다.
빌어 처먹을. 겨우 하나를 끝내자 기다렸다는 듯 우수수 양피지 더미들이 쓰러졌다. 사감 업무만으로도 돌아버릴 지경인데 공문까지 처리하려니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뻑뻑한 눈을 문지르고 깃펜을 다시 집어 들었다. 뭉뚝해진 끝을 잘라내자 깃펜이 새것처럼 날카로워졌다. 마음 같아선 날카로운 촉으로 공문들을 모두 구멍 내고 싶었다. 성과를 요구하는 공문들을 불태울 듯 노려보다가 눈을 감았다. 그래도 이 정도는 견딜 만했다.
정갈하면서도 화려하고, 단순하면서도 노련한 편지들을 떠올렸다. 슬리데린 학부모들에게서 온 편지들은 하나같이 제 자식 자랑뿐이었다. 제각각 다른 자랑을 늘어놓으면서 끝에 가선 다 같은 얘길 했다. 부디 우리 아들, 딸을 잘 부탁한다고. 젊은 교수를 무시하지 않아서 고맙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청탁은 사절이라고 답장해야 할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맥고나걸 교수라면 알지도 모른다. 지금도 그를 잡아먹지 못해 안달인 사람에게 어떻게 도움을 청한단 말인가. 세베루스가 삐죽 튀어나온 생각의 실낱을 비웃었다. 결국, 깃펜을 던지고 일어났다. 잠깐이라도 눈을 붙이자는 생각으로 침대에 누웠다. 힐끗 시계를 확인하니 새벽 4시였다. 제기랄, 하루는 왜 스물네 시간뿐이지? 쏟아지는 졸음에 그가 웅얼거리다 눈을 감았다.
04
“인사 카드를 보니 오늘이 생일이더군요. 알버스, 오늘은 괜히 일 시키지 마세요. 솔직히…아직도 혼란스럽긴 합니다. 그 아이, 아니, 세베루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도통 모르겠어요. 그래도 당신 말대로 어둠의 마법에 손을 댔지만, 다시 우리 품으로 돌아왔으니 잘 대해줘야겠죠.”
덤블도어가 푸른 눈을 반짝였다. 흥미롭거나 재미있는 것을 찾으면 보이는 눈빛이었다. 평소 같았으면 손뼉을 마주하며 호응을 해줬겠지만 그럴 기분이 들지 않았다. 인사카드를 책상 위로 내려놓고 사각 안경을 벗었다.
“세베루스가 교수로 부임한 날에 비가 참 많이 내렸죠.”
세베루스가 호그와트로 돌아온 날엔 비가 억수같이 내렸다. 지친 얼굴로 트렁크를 끌고 들어온 제자는 제법 어른티가 났다. 계단을 내려가는 내내 맥고나걸은 손끝을 만지작거릴 뿐 어떤 말도 하지 못했다. 역사상 가장 끔찍한 마법사와 뜻을 함께한 제자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라 입술만 달싹였다. 세간의 의심을 등에 지고 다시 지하로 돌아온 세베루스는 집무실의 먼지를 정리하고 벽난로에 불을 피우는 스승에게 조용히 감사를 표했다.
거꾸로 매달린 그를 다시 내려주고 기숙사로 돌려보내는 그리핀도르 사감에게 감사하단 인사를 했던 그때도 그런 표정이었다. 울컥 무언가 솟아오르지만, 자신도 그것이 무엇인지 몰라 꺼내지 못할 때 짓는 표정. 언젠가 슬러그혼이 끝맺지 못한 말이 생각났다. 명석하고 영특하지만, 어딘가 모르게 빈 곳이 있는 아이라고 말하면서 슬러그혼은 뒷이야기를 숨겼다.
“사감도 아니었고 당신만큼 주의 깊게 지켜보진 못했지만, 세베루스 곁에 생일을 축하할 만한 친구가 없다는 것 정돈 알고 있습니다. 그가 귀찮아하지 않을 선에서 몇 가지를 준비했습니다. 알버스도 거들어주세요.”
뒷이야기가 무엇이든 상관없었다. 지금 여기 호그와트에 머무는 세베루스를 축하하는 게 더 중요했다. 화려하고 시끄러운 건 질색할 테니 조용하고 비밀스럽게 축하할 계획이었다. 지금쯤 부엌에서 집요정들이 아담하고 소박한 케이크를 만들고 있을 것이다. 케이크를 궁금해하는 덤블도어에게 적당한 임무를 주고 인사카드를 챙겼다.
“그에겐 비밀로 하세요. 눈치채면 숨을 게 분명하니 말입니다.”
덤블도어가 고갤 끄덕이며 미소를 지었다. ‘비밀, 이벤트, 감동’, 덤블도어가 좋아하는 것들이니 이번엔 잘 협조할 것이다. 맥고나걸이 흡족한 표정으로 교장실을 나섰다.
05
오늘도 식사를 건너뛰었다. 기숙사에 전달할 사항들도 있었고, 성내를 순찰해야 했기 때문이다. 모든 일을 마치고 지하로 돌아왔을 때, 세베루스는 거의 탈진 상태였다. 터벅터벅 무거운 걸음을 집무실 앞에서 멈춘 그가 문을 열다 말고 눈빛을 바꾸었다. 안에서 묘한 기척이 느껴졌다. 지팡이를 꺼내고 살며시 문틈 사이로 몸을 밀어 넣었다. 미끄러지듯이 안으로 들어가자 아롱거리는 작은 불빛이 그를 반겼다.
마른 침을 삼키며 다가가자 기다렸다는 듯 달콤한 향이 코를 간지럽혔다. 빛이 차분히 내려와 향을 풍기는 근원지를 비추었다. 매끈하고 진한 빛깔의 케이크였다. 등대처럼 홀로 케이크를 비추던 촛불이 손짓했다. 입술을 벌리고 소원을 담은 따스한 숨을 뱉어 빛을 꺼주길 바랐다. 손끝을 가져가던 세베루스가 일렁이는 불빛에 흠칫 놀라며 뒤로 물러났다. 이건 함정일지도 모른다. 불을 끄는 순간 달콤한 향은 사라지고 끔찍한 화약내가 그를 죽음으로 이끌지도 모른다.
/생일 축하합니다, 세베루스./
그의 의심에 넌덜머리가 난다는 듯 촛불이 카드를 비추었다. 생일이라고? 지팡이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어떤 멍청이가 생일 축하 케이크란 말에 속는단 말인가? 입술을 깨물다 지팡이를 케이크에 겨누었다. 그들의 계략에 순순히 넘어가지 않으리라. 피해를 줄일 만한 주문을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중얼거리려는 찰나 벽난로의 불이 거세졌다. 그러자 어둠이 물러나고 온기와 빛이 안을 가득 채웠다. 케이크 위의 빛이 초라하게 느껴질 정도로.
“세베루스, 그건 ‘진짜’ 생일케이크네.”
구석에 숨어있던 덤블도어가 한숨을 쉬며 다가왔다. 맥고나걸이 늘어놓는 걱정이 무엇인지 이제야 알 것 같았다. 그가 생일을 즐겨본 적이 있긴 할까? 착잡한 기분을 흘려보내며 케이크를 몇 조각으로 잘랐다. 세베루스는 여전히 영문을 모른단 표정이었다. 부들부들 떨리는 지팡이 끝을 애써 무시하며, 접시에 케이크를 덜었다. 제 몫의 조각을 받아든 세베루스가 그제야 지팡이를 내렸다.
“이게 다 뭡니까?”
“준비한 사람이 누군지 밝힐 수 없네. 안타깝게도 자네가 어마어마한 의심을 하는 바람에 완벽한 비밀은 아니게 됐군. 그래도 혹시나 해서 기다린 보람이 있네. 내가 없었다면 자넨 분명히 이 케이크를 날려버렸을 테니.”
“아직 제 물음에 답하지 않으셨습니다. 이게 뭐냐고 물었습니다.”
“개교기념일 케이크? 아니면 자네의 뒤늦은 부임 축하? 뭐라고 생각하나?”
“누군가 엄청난 동정심을 발휘해 제 생일을 알아낸 모양이겠죠.”
“고약한 의심일세. 내 몫의 케이크를 챙겼으니 이만 가보겠네. 나머지는 알아서 즐기게나.”
덤블도어가 꽤 큰 조각이 담긴 접시를 챙겨 집무실을 떠났다. 홀로 남은 세베루스가 입술을 이죽이다가 케이크를 내려다보았다. 그 눈길에 담긴 건 분노도, 짜증도 아니었다. 머뭇거리다 포크를 집어 조각의 가장 구석진 곳을 노렸다. 삼각형 모양으로 포크 위에 담긴 빵조각이 짙은 향을 뽐냈다. 입에 담고 천천히 음미하자 혀에 달콤 쌉쌀한 맛이 퍼졌다. 그러자 추억들이 아롱아롱 향과 뒤섞여 머릿속을 채웠다.
/세브, 넌 케이크도 좋아하고 초콜릿도 좋아하니까 내가 초콜릿 케이크를 만들어줄게!/
짧은 숨을 뱉자 케이크 위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던 빛이 소원과 함께 허공으로 떠났다. 나쁘지 않군. 손에 쥔 포크를 내려놓지 않은 채 세베루스가 중얼거렸다.
06
“그래서 그 뒤론 어떻게 됐나요?”
“세베루스가 이 잡듯 케이크를 준비한 사람을 찾는 바람에, 그다음부턴 챙겨주지 못했지.”
“정말 스네이프 교수님답네요.”
주인을 잃은 책상에 접시를 내려놓으며 두 사람이 마주 보고 웃었다. 만약 이 자리에 있었다면 질색을 하다가 맥고나걸의 등쌀에 지쳐 한입 정돈 먹었을 것이다.
“교수님 초상화는 오늘 일을 알까요?”
“오, 당연히 비밀이지. 초상화를 두고 굳이 여기까지 온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단다.”
초상화가 그의 성격을 제대로 담았다면, 맥고나걸이 생일 케이크를 준비했다는 사실을 인지한 순간부터 불만을 토해낼지도 모른다. 미소를 지은 해리가 촛불을 껐다. 아롱거리던 빛이 사라지자 눅눅한 어둠이 내려앉았다. 두 사람은 불평을 토하는 대신 그 어둠 속에서 외로운 시간을 보냈을 어떤 이를 떠올렸다.